"등기부에 보증금 명시 의무화.. 최우선변제금도 상향해야" [모래 위에 쌓은 '갭투자'의 공포]

이희진 2019. 7. 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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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예방책 없나..전문가 제언 <끝> /집이 경매되면 세입자 '선택지' 적어/ 임대사업 등록주택 땐 기재도 필요/ 최우선변제금, 전세가 70%는 돼야/ 빌라·아파트 등 주거 유형별 세부화/ 현재 중개사 역할, 거래 성사에 그쳐/ 관리·금융·판매까지 담당 범위 확대/ 사고 공제 한도액 1년 기준 비현실적/ 보증보험 일반 보험사도 판매 허용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는 갭투자 피해는 투자자의 탐욕과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 부동산 불경기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시작됐다. 투자자가 무리하게 빚을 끌어모아 부동산을 사들였다가 부동산 경기 둔화와 대출 규제로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구조다.

갭투자자들이 파산하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무고한 세입자다. 이들은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면 세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다.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걸 바라보고 있거나 빚을 내서라도 자신이 직접 집을 사들이는 게 전부다.

갭투자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 임차인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갭투자는 비양심적인 도박행위”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는 갭투자에 대해 “투기를 조장하는 갭투자자들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경쟁적으로 인상시킨다”며 “반대로 가격이 하락할 때는 세입자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역전세난 등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전문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변호사는 “일부 악의적인 투자자의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 가능성까지 고려해 세입자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의도로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기도 한다”며 “갭투자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줄 수 있는 비양심적인 도박 행위이자 나아가 사기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등기부등본 맹신 말아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등기부등본 한계를 지적하면서 세입자의 보증금 액수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쪽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등기부등본은 세입자가 확인하는 가장 기본 서류이자 확실한 자료이기 때문에 등기부등본 기재사항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 변호사는 “안전한 부동산 거래를 위해서는 고려할 게 너무 많은데 등기부등본에는 정말 기본적인 권리관계만 적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등기부등본을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게 (갭투자 피해를 막는)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임차인의 보증금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계약할 경우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공시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권 교수도 “임대사업 등록을 낸 사업자가 운영하는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임대사업 등록주택이라는 걸 등기부등본에 기재해야 한다”며 “동시에 보증금을 기재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전 세입자가 나가고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다시 의무적으로 그 내용을 등록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R하우스 건물 입구에 ‘갭투자’ 피해 관련 소송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제원 기자
◆“최우선변제금 현실성 떨어져 늘려야”

최우선변제금이 지나치게 낮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우선변제 제도 대상이 서울시내 기준 보증금 1억1000만원 이하로 된 상태에서는 제도의 현실성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최우선변제 제도가 만들어진 취지는 금액이 적은 사람을 보호하자는 것”이라면서도 “전세 제도가 유지되는 한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에 근접해 높게 형성되는데, 최우선변제 금액을 현실적으로 대폭 상향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최우선변제금이 적어도 서민주택가격의 전세보증금 가격인 3억5000만원에서 4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지영 부동산 R&C 연구소장도 “지금의 최우선변제금은 현실성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소장은 “부동산시장의 과열, 침체 등 시장의 즉흥적인 변화에 정부가 발빠르게 대응하면서도 정작 임차인에 대한 정책은 더디고 미비하다”면서 “전세가의 70% 수준으로 최우선변제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빌라·아파트·오피스텔 등 유형별로 보증금 액수가 다른 만큼 최우선변제금을 주거 유형별로 세부화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 변호사는 최우선변제금 상향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최우선변제금을 올렸을 경우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면서 풍선효과를 우려했다. 최 변호사는 “최우선변제권을 넓히면 영세세입자 보호 범위가 넓어지겠지만 금융기관을 포함한 일반 저당권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며 “결국 금융기관이 대출을 줄이게 되고 다른 투자처에서도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공인중개제도도 손봐야

세입자는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위험을 피하기 위해 중개수수료를 지불하며 국가 인증을 받은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얻는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공인중개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양 소장은 중개사 역할이 단순히 건물주와 세입자를 중개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그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중개의 범위가 너무 좁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인중개사들이 중개 역할뿐만 아니라 관리·금융·판매 등 모든 걸 통틀어서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 중개수수료가 선진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중개수수료를 지금보다 높이되 세입자가 입주한 집에서 나갈 때까지 관리해주는 등 공인중개사의 역할 범위를 확대하는 방법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권 교수는 공인중개사의 질적 성장이 절실하다고 봤다. 권 교수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주기적인 윤리교육과 보수교육이 정말 강화돼야 한다”며 “더불어 공인중개사 밑에서 일하는 중개보조원 교육도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공인중개사가 불법이나 탈법을 자행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힘줘 말했다.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할 때 변호사가 동반하거나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비용을 중개비에 포함하는 방안도 나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실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최 변호사는 “부동산 계약 시 변호사가 입회하거나 서류 확인 등으로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법리적인 측면에서 부동산의 위험을 확인하면 터무니없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규제 성격이 강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조건을 달았다.
◆“부동산 사고 보험액도 상향해야”

전문가들은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나 SGI서울보증을 통해서만 가능한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을 일반 보험회사도 취급하게끔 해야 한다고 봤다.

권 교수는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나 SGI서울보증 외에 일반 보험회사도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을 도입해서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사고가 발생하면 공제받을 수 있는 보증금 한도액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은 공인중개업의 경우 개인 1억원, 법인은 2억원까지 보장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는 사고 한건당 한도가 아니라 1년간 발생한 사고 전체의 한도라서 충분히 보상하기에 턱없이 낮다. 예컨대 공인중개사 1명의 과실로 한해 부동산 피해자 100명이 발생한 경우 한 사람당 100만원을 보장받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부동산 사고 건당 한도액을 적용하는 건 맞지 않고 한 해 발생하는 사고 전체의 한도액은 늘릴 필요가 있다”며 “사고에 대한 보상 한도를 올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도 “공인중개사가 보증보험에 가입했다는 걸 안 세입자는 만일의 경우 1억원까지 보상받는 거로 알지만 다른 임차인들도 다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며 “한 해 부동산 사고 공제금이 총 1억원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보증보험 금액을 대폭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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