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주중엔 스터디, 주말엔 임장.. 부동산에 뛰어든 2030

안하늘 입력 2019. 10. 3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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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로 자금 불리고, 10년 후 재개발 노리고… 서울에 내 집 마련 작전

“서울 아파트는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아파트 가격 앞에서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2030들은 오늘도 분투한다. 퇴근 뒤엔 부동산 공부, 주말에는 임장(현지 답사)을 다닌다. 연합뉴스

집은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곳이란 말도 공허하다. 살고 싶지만 살 수 없는 게 서울 아파트여서다. 지난 9월에 거래된 아파트 중위가격은 전달에 비해 1,000만원 오른 8억7,272만원에 달했다. 중위가격이란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전체를 일렬로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가격을 말한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건, 저 정도 돈을 동원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나라 2인 가구 이상 월평균 처분 가능한 소득은 368만원. 20년간 숨만 쉬고 살면 서울 중위 가격 아파트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물론 20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꼼짝 않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2030세대에 서울 아파트는 닿을 수 없는 꿈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집 구입을 포기하고 최근 외제차를 산 강모(29)씨는 "어른들은 우리더러 인생을 즐기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린 ‘강제 욜로’당한 셈"이라며 "아둥바둥 살기 싫어 집을 포기하니 외제차를 사거나 해외 여행을 가는 등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30이 강씨처럼 집을 포기한 건 아니다. 없는 길이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한다. 2030이 부동산 공부에 매진하는 이유다.

◇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듣는 부동산 강의

지난 22일 저녁 7시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 하루 업무를 끝낸 2030 40여명이 필기구를 꺼내 들고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었다. 책상 위엔 영어나 중국어 책이 아니라 각종 도표와 지리 정보를 담은 책이 있었다. 요즘 유행이라는 ‘직장인 부동산 스터디’다.

"어차피 우리는 청약 안 됩니다. 그렇다고 평생 월세, 전세 살 것입니까? 다들 서울의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럼 투자해야죠." 자신을 전업 투자자라고 밝힌 강사 A씨는 3시간 넘게 경제 사이클부터 현 부동산 정책, 수요와 공급량 예측과 같은 원론적인 부분부터 구체적인 투자방법까지 설명했다. 40여명의 수강생은 마치 대학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듯 강사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집중하며 들었다. 특히 강의 막바지 유망 지역을 추천하는 부분에서는 질문이 쏟아졌다.

부동산 스터디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이웅희 부동산 자산관리가. 안하늘 기자

강남에서 부동산 스터디를 운영하고 있는 이웅희 부동산 자산관리가는 "스터디를 찾아 오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20대까지 내려갔다"며 "2030은 대개 5,000만원 내외로 투자처를 찾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던 부동산 중개업체들도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예전엔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그 동네에 오래 산, 토박이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요즘은 “부동산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젊은 고객들을 상대하는 이들이 늘면서 최근에는 강남, 잠실 등의 부동산 중개인들은 나이대가 열 살 이상 어려졌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자금력 없는 2030 “투자부터 해야 서울 입성 꿈꾼다”

부동산 스터디에 모이는 2030은 지금 당장 한 방에 집을 구하겠다는 게 아니다. 부족한 자본을 쌓기 위해 일단 외부에서 투자를 하고 그 이익을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것이 목표다. 직장인 김성엽(32)씨는 "강남이나 요즘 잘 나간다는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수), 한강 인근 등 1급지들은 대부분의 2030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재건축, 경매 등을 통해 자금을 어느 정도 마련한 뒤 10년 내 서울로 입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투자 정보에 목마르다. 부동산 카페를 통해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거나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꾸리는 스터디에 참가하기도 한다.

아예 '몸테크'를 불사하는 이들도 있다. 몸테크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노리고 노후지역의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을 말한다. 25~30년 된 아파트를 비교적 싸게 사서 10년간 불편함을 견디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재건축이 되지 않겠느냐고 믿어 보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30년 넘은 아파트에 사는 윤성은(33)씨는 "녹물도 나오고 주차도 불편하지만 눈 딱 감고 10년만 버틴다는 생각에 들어왔다"며 "현 정권에서는 규제하지만 아파트 상태를 보면 결국 해 주게 돼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분양한 과천위버필드 견본주택에서 방문객이 줄지어 서 있다. SK건설

◇최고 로또는 수도권 분양권 … 지금은 ‘과천’

2030이 가장 바라는 것은 신규 아파트 분양이다. 이 꿈에 가장 근접한 곳이 있다. 바로 과천. 서울에서 신규 아파트 분양은 불가능에 가깝다. 수도권, 특히 과천은 청약 가점이 낮아 2030이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으로 간주된다. 수원에 사는 직장인 곽모(32)씨는 "과천에 사는 친구 집에라도 전입신고를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청약 당첨만 되면 완전히 대박"이라고 말했다.

과천에는 대규모 아파트 분양이 예고되어 있는데, 과천에서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한다. 과천시 전체 인구 5만8,000명 중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로 1순위 청약 요건을 갖춘 사람은 1,000명도 채 안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최근 과천에 전세를 구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지금이라도 주소지를 과천으로 옮겨 내년 분양을 노린다는 것이다. 이에 과천 일대 전세 가격은 단기간에 수천 만 원에서 수억 원이 뛰었다. 분양만 받으면 4억~5억원은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처럼 과천이 뜨거워지자 정부에서는 위장 전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밤에 직접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러 거주 여부까지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동산 카페나 스터디에서는 이런 단속을 피하는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가끔 과천에 가서 전화도 하고 먹을 것도 카드로 사먹는 등 거주 기록을 남겨야 한다”면서도 “청약 욕심에 부양가족을 늘리려고 가짜 임신 서류를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절대 하지 마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현장답사 위해 주말마다 지방 탐사

재개발 분양권 시장도 2030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는 분야다. 이는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의 입주 권리를 웃돈(프리미엄)을 주고 사는 시장이다. 잔금은 입주 때 지불하기 때문에, 분양부터 입주까지 2~3년간 분양권만 사고파는 식의 투자가 가능하다. 프리미엄이 오르면 다시 되팔면 되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도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서울은 분양권을 사고팔 수 없는 규제가 도입되면서 주로 수도권, 지방 등 비교적 규제가 적은 ‘비조정지역’을 노린다. 이에 수원, 인천, 부천, 성남 등으로 시장 조사를 하러 가는 ‘임장(현지답사) 스터디’도 활발하다. 해당 지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재개발 부지, 교통, 학군, 주변 상업 시설을 직접 확인하고 정부의 도시 계획 등 투자 호재를 서로 공부한다.

임장 스터디에 참가해 본 적 있는 김모씨는 "관심 있는 지역에 혼자 가기는 부담스러워 아예 주말마다 소풍 간다는 생각으로 임장 스터디를 하고 있다"며 “지금은 허허벌판이거나 낙후지역이지만 5년, 10년 뒤의 가격을 전망해 본 뒤 투자에 뛰어들지 결정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일부 임장 스터디들은 시세보다 싼 급매물을 잡기 위해 관심 지역 부동산 중개사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입주권 전매를 수차례 성공한 부동산 투자 고수 임모(34)씨는 “평소 관심 있는 지역에 시간 날 때마다 음료수도 사 들고 가서 부동산 사장님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급매물이 나왔을 때 우선순위로 연락이 오기도 한다”며 “주변 사람들 중에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아르바이트까지 자처하면서 부동산 사장님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서울 서초구 신반포 3차 및 경남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모습. 홍인기 기자

◇“쥐꼬리 월급 모아 봤자…투자만 잘하면 대박”

한창 일하느라 바쁜 2030이 주중에는 스터디에 참석하고, 주말에는 지방으로 임장까지 가는 이유는 뭘까. 인생 첫 부동산이 이후 자산 규모를 결정한다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모(35)씨는 "결혼하면서 아파트 사려고 계약하던 중에 집주인이 갑자기 가격을 2,000만원이나 올려 홧김에 거래를 중단했다"며 "그게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라고 말했다. 4년이 지난 현재 그때 그 아파트의 시세는 당시보다 2배 뛰었다. 반면 전세로 살던 빌라에서 주차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많이 무리해서 아파트를 산 박모(33)씨는 현재 1가구 2주택자가 됐다. 집값의 70%를 대출 받아 아파트를 샀는데,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습 효과 때문에 부동산에 뛰어드는 연령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강남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20대 성인이 되자마자 수천만 원의 투자금을 주고 갭투자(매매가와 전세금의 차를 이용해 집을 사들이는 투자 방식)를 권유하거나, 자녀 명의로 재개발 단지 내 노후 빌라를 사 두기도 한다.

하지만 2030은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투자에 실패할 경우 버텨낼 힘이 더 없다.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서 생긴다. 이웅희 자산관리가는 “잘 모르면서 마음만 앞서 전 재산을 상가나 오피스텔 등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고 상담을 오는 2030도 많다”며 “조급증부터 버리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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