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라촌까지 온 '갭투자 쓰나미'.. 신혼부부를 덮치다
전세로 시작한 부부에 직격타.. 법적으로도 뾰족한 수 없어 문제
서울에서 파산한 수백 채 규모 갭투자자는 강씨만이 아니다. 지난달 17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A빌라 입구에는 메모와 편지가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집수리를 해달라'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곳에 살던 이모(62)씨는 강서구·양천구·구로구 일대에 집 600여채가 있으나 올해 1월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피해자 주변에선 '좀 비싸게라도 집을 사들여서 눌러 살면 그만 아니냐'고들 한다. 결혼 5년 차인 박애정(34)씨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작년 2월 만삭의 몸으로 갭투자자 강씨의 화곡동 빌라에 전셋집을 얻었다. 집 살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반지하집에 들어갔다. 아이는 지금 두 살이다. 박씨는 집주인이 잠적한 뒤, 정부 지원 임대주택에 당첨됐다. 입주금 9000여만원만 내면 평생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었지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
2017년 12월 전모(32)씨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구로구 고척동 빌라에 1억85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일단 살림을 먼저 합친 뒤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올해 2월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려고 집주인에게 연락했으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전씨는 "돈에 물리고 나니 퇴근해도 단란하게 함께하기보다 서로 이것저것 방법 알아보느라 휴대전화 들여다보기 바쁘다"고 했다.
갭투자족은 정부를 탓한다. 갭투자자 강씨를 대신해 주택을 처분 중인 이모씨는 "주택 경기가 좋을 때 투자한 건데, 부동산 대책으로 집 사려는 사람은 씨가 마르고 은행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들의 '출구전략'은 고스란히 세입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경남 창원에 192가구를 보유한 김모씨는 지난해 법원에 개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세입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보증금은 줄어든다. 동탄신도시 갭투자자 임모씨 소유 아파트 270가구 세입자들은 올해 5월 "임씨가 허위의 가족 간 채무를 만들어 집을 헐값에 경매에 넘기고 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갭투자 상담 업체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서울 신도림역 앞 컨설팅 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요즘 서울 집값이 다시 오름세다. 갭투자 하기 좋은 곳을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이 업체는 매주 토요일 참가비 1만원을 받고 투자 세미나를 연다.
정부는 이달 3일에야 '전세금 반환 보증' 가입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갭투자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액(差額·gap)만큼만 투자하고, 나머지 집값은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충당해 집을 사는 행위. 예컨대 집값이 1억원이고 전세금이 8000만원이면, 갭투자자는 집 한 채값 현금으로 5채를 사들일 수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올트먼·젠슨황·나델라...美 AI 안전 논의한다
- ‘고속도로 달리는 택시기사 폭행’... 檢, 카이스트 교수 기소
- ‘암 진단’ 英국왕, 내주 대외공무 복귀… 6월엔 일왕부부 초청
- 의사 출신 안철수 “2000명 고집이 의료 망쳐…1년 유예하자”
- 日 금리 동결에 엔·달러 환율 158엔까지 돌파...34년만 처음
- 초등 1·2학년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과목 분리...스포츠클럽 시간도 늘린다
- 홍준표 “행성이 항성 이탈하면 우주미아” 한동훈 겨냥했나
- 숨진 엄마서 태어난 가자지구 미숙아… 나흘만에 사망
- 도박자금 마련 목적 16억원대 전세사기…50대 임대인 징역 5년
- 흉기 휘둘렀지만 ‘살해 의도 없었다’ 주장에도... 법원 “처벌 불가피” 징역 3년